밥빌런 ::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29-29

운명이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어느 일요일 새벽 어머니가 나를 깨워 부산역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행여 작은 보탬이라도 될까 싶어 기차표 암표장사를 할 엄두를 내고는 나를 데리고 새벽 같이 길을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는 역의 상황을 한동안 지켜보기만 했을 뿐, 시작도 하지 않고 그냥 발걸음을 돌리셨다. 아침때를 한참 넘긴 시간이어서 몹시 배가 고팠다. 우리 모자는 집 근처에 와서야 토마토 몇 개를 사서 겨우 요기를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일은 어머니와 나만 아는 일로 남았다. 나는 어머니가 왜 그냥 돌아왔는지도 몰랐고 더는 그 일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이번에 이 책을 쓰면서 어머니께 여쭤보았더니 어머니는 “듣던 거 하고 다르데”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때 우리 모자 생각이 난다. 물론 우리는 이제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지난 날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과거 어려웠던 시기를 견뎌내는 데는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국가가 가난해서 복지 기능을 제대로 못할 때는 민간이 나서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던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기가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국가가 도와 어려움을 견뎌내게 하고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이것을 제대로 하는 것이 복지국가가 아닌가.

 나는 이런 복지국가의 꿈을 이루고 싶다. 그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국민과 더불어, 함께 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표현한 그 정신과 가치는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시대정신의 축약된 표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언제나 치열했던 그는 서거조차 그러했으니, 나를 다시 그의 길로 이끌어 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노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다.  

-끝- 

 

ps
2012년도 대선 문재인 후보 시절 올라왔던 글이다. 
'운명' 책으로 출판되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책보다는 훨씬 적은 분량이다.
가능하다면 책으로 보는 것은 추천한다.

Posted by 배고픈 밥빌런 Posted by 배고픈 밥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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