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빌런 :: 김부겸에게 접근했던 레전드급 남파간첩 사연

우화!!! 앳된 모습 봐라! 청년정치인 김부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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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김부겸 대변인, 북한 남파간첩으로부터 돈 받은 혐의[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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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18일 MBC에서 방송되었던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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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피고인 3년 구형[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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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25일 MBC 방송된 내용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릴까???

아마도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굉장했던 남파간첩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이 70세의 할매이면서 북한 서열 22위에 랭크되던 남파간첩

이선실 남파간첩 주민등록증 사진

이선실 李善實 할매!!!!

인터넷 조금만 검색 해보면 당시의 사건들을 알수 있다.
하지만 뜬금 없이 운동권 출신의 젊은 정치인이 연루된 것은 충격 그 자체다.
김부겸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이선실 사건과 김대중 총재

 1992년 10월, 정국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를 향해 가파르게 내닫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을 펼쳐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날 신문 1면에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란
이름의 간첩단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었다. 
 얼마 전부터 공안 당국은 북의 거물 간첩이 국내에 잠입하여
운동권, 특히 정계에 진출한 운동권을 포섭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있었다.
정치권 특히 야권은  긴장했다.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북풍이 시작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공안 당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이었던
정형근이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거물 공작원 이선실과
남한 내의 핵심 공작원 황인오가 관련된
중부지역당 사건을 발표한 것이다.
정형근은 일문일답을 통해 북한 공작원들이
정치권에도 깊숙이 침투했다고 밝혔다. 
 대선을 코앞에 둔 민주당은 김대중 총재를 겨냥한
용공 조작이 또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극도로 긴장했다.
그러나 내가 그날 대경실색한 것은
정작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 터진 것 때문이 아니었다.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북한 공작원 이선실이란 인물 때문이었다.
아무도 이선실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몇 년 전까지 나의 대방동 집을 드나들던

이웃집 신씨 할머니였다. "아, 이 할머니가!"

 1988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진보정치연합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던 나는
퇴근하여 장모님과 알고 지낸다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은 내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별 생각 없이 한두 차례 만났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왔더니
그 할머니가 수표로 500만 원을 두고 갔다고 했다.
마땅한 수입도 없이 살던 시절이었다.
아쉬운 돈이었다. 일단 은행에 예금했다. 
 그후 할머니는 가끔 우리 집을 찾아왔다.
낮에는 내가 집에 없다보니 아침에 나를 만나러 오곤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재야의 명망가도 아니고 오랜 운동을 해온 분도 아닌
할머니의 입에서 혁명이나 통일운동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당시는 학생운동을 비롯한 재야운동권에서
통일운동을 추진하던 시절이었다.
해방과 6·25전쟁 전후 시기에 빨갱이로 몰렸던 이들이
독재 시절에 닫았던 입을 열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런 서러운 경험을 갖고 있는
미망인 정도로 할머니를 생각했다.

나이 칠십의 할머니 간첩이 세상에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할머니는 나한테 지금 운동 노선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했고,
'혁명 대오'니 하는 단어를 사용했다.
할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색했지만
운동권에서조차 잘 쓰지 않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상했다.
아마 할머니가 젊은 시절엔 저런 단어를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혁명 이야기에 대해서는
일정한 선을 긋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앞으로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

저에 대해서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합법적인 정치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지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보 정당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이야기 하지 마시고 앞으로 저를 찾지도 마세요"라며
야멸칠 정도로 축객逐客을 선언했다.

그 전에 돈도 얼마 정도는 갚아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후 나는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1990년쯤
몸이 안 좋아 강원도로 요양 간다며 사라졌고,
그 뒤로는 우리 가족들도 만날 일이 없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뒤에 간첩단 사건이 터졌고
핵심 인물로 발표된 북한 공작원이 바로 이선실,
내가 아는 신씨 할머니였던 것이다. 모골이 송연했다.
 공안 당국이 간첩 사건 수사의 연기를 피우기 시작하면서
당 안팎에서는 여러 소문이 난무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이름이 올라본 적도 없었고
스스로도 그런 일에 연루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런데 그 간첩이 내게 오래전에 만났던
할머니로 밝혀지자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일단 당시 김대중 총재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조승형 변호사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피가 마르는 시간이 흘렀다. 2주쯤 지났을까.
이기택 총재와 함께 대구 출장을 다녀와 밤늦게 퇴근했는데
새벽에 기관원 예닐곱 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내게 이선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조 실장에게 전화로 상황을 보고하고 연행에 응했다.
처음 당하는 연행도 아니고 처음 조사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내 머릿속은 아득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끌려가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간첩 사건이다. 간첩 사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잘못하면 집안 모두가 빨갱이로 몰릴 수도 있고
이 나라에 발이나 붙이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 간첩 사건이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전에
차는 남산 안기부에 도착했다.
 
 연행되자마자 무지막지한 구토와 고문이 시작됐다.
공안기관의 수사는
일단 조사 대상자를 폭력으로 완전히 무너뜨린 후에 시작한다.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한 상태로 만들어놓고 자백을 강요한다.
그들은 나한테 이선실과 어떤 내용을 공모했는지,
공작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궁했다.
또 자금을 받아 당의 어디에 전달했는지 캐물었다.
수표로 받은 500만 원을 은행에 예금해둔 것은
수사기관의 증거자료가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나의 반론 자료도 되었다.

 장모님부터 아이들까지
서로 집을 오가며 지냈던 외로운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돈은 좀 있는 것 같고,
그동안 쌓인 정에 그냥 준 건지,
빌려준 건지 애매한 채로 생활비에 보태라며 주었다기에
일단 은행에 넣고 개인적으로 썼지,
무슨 당에 갖다줘다는 것이냐며 당당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장모와 아내도 연행되었다.
가족이 안기부 조사실에서 겪을 고초를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4일쯤 지났을까.
수사를 지휘하던 정형근 대공수사국장이 나타났다.
"아시겠지만 정치적인 사건입니다.
있는 그대로 모두 진술하세요."
정형근은 한편으로 나를 회유하며 한편으론 협박했다.
그는 말미에 불편한 것은 없느냐고 물었다.
나 하나 족치면 됐지
장모와 아내까지 조사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정형근은 "아, 그래요?" 하더니 주위를 돌아보며
"즉각 귀가 조치시켜" 하고 지시했다.
서슬 퍼런 권력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두 시간도 안 돼 아내와 장모가
집에 돌아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는 계속됐다.

"서울대를 나올 정도면 똑똑한 놈인데,
뭔가 의심스러운 사람이란 걸 알았으면
신고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런데 안한 걸 보면 뭔가 있는 것 아니냐?"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놓고
"이 안에 너와 이선실이 나눈 대화 내용이
모두 기록돼 있다"며 협박했다. 
 나는 모든 사건이 종결된 뒤
요약한 사건 기록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나와 이선실이 나누었다고 되어 있는 대화 기록은
주로 황인호가 이선실로부터 들은 진술이었다.
이선실이 황인오에게

"부겸이 이놈, 키워서 혁명전사를 만들려고 했더니
도무지 협조를 안 해.
돈도 좀 주려 했더니 받지도 않고⋯⋯ " 하고 말했다 한다.

이 진술이 역설적이게도
나의 무죄와 결백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검찰은 나를
국가보안법상의 회합, 금품수수, 불고지죄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회합과 금품수수에 대해서는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불고지죄에 해당한다는 죄목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해 2년을 선고받았다.
그때가 1993년 2월이었다.
석 달 만에 풀려난 사이, 대선은 이미 끝나 있었고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한 김대중 총재는 영국으로 떠난 뒤였다.
억장이 무너졌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간첩단 사건이었지만
결과는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이었다.
나와 김 총재의 비서 한 사람이 구속됐지만 그 역시 곧 풀려났다.
이선실이 과연 거물 간첩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선실에 대한 내용도 허술했고 조사 결과도 별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1992년 겨울의
긴박한 대선 정국을 달구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정권은 그렇게 정체도 모호한 할머니 한 사람의 '마실 나들이'를
남한 적화를 위한 간첩의 정치권 포섭 공작으로 덧칠했고
대선이 끌나자마자 흐지부지 날려버렸다. 
 대통령 선거의 판도를 바꿔놓은 간첩단 사건은
내게 적진 않은 상처를 주었다.
정치권에 들어와 나름대로 길을 찾던 나에게
간첩단 사건은 엄청난 좌절로 다가왔다.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가혹한 운명의 올가미가 씌워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도 내가 출마한 선거에서 상대 당의 선거 운동원들이
나를 간첩에게 돈 받은 사람이라고 공격하기도 했지만,
간첩 사건의 특성상 적극적으로 항변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3당 합당 이후 절치부심하면서
민주당 합당을 이뤄내고
대선을 준비하던 김대중 총재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은 오랫동안 짐으로 남았다.

정권 교체의 중요한 길목에서
내 작은 실수가 커다란 상처를 남긴 것 같았다.
내가 석방됐을 때 김대중 총재는
이미 영국으로 떠나고 없었다.

김대중 총재는 당시 영국으로 찾아온 측근에게
민주당이 키워야 할 재목 여섯 사람 중 한 명으로
나를 꼽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더욱이 내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부대변인직을 수행하지도 못했는데
급여를 따로 모아두었다가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국에서 돌아온 김 총재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면서
민주당이 분당되는 바람에
나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할 기회는 더 지체되었다.
마침내 언젠가 김대중 총재를 찾아뵙고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김 총재는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그저 좋은 약이라고 생각하세요.
앞으로 매사에 신중하고 늘 꾸준히 공부하세요.
내 지켜보겠습니다."라며 격려했다.

인간적으로는 아버님 같은 분인데
정치적으로는 끝까지 따를 수 없었던,
그래서 김대중 총재만 생각하면 늘 회한에 젖는다.

『나는 민주당이다, 김부겸 저, 2011』

 

레전드급 남파간첩 이선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거물급 간첩은 무사히 북으로 돌아갔고
북에서는 대대적인 환영과 환대를 받는 영웅이었다.
승승장구였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끝까지 화려하진 않았다.

아래 기사를 읽어보면 정말 기구하구나 싶어진다.

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90900&fbclid=IwAR0LYoHMcx7CrrBPINltiNKrCB6egRXwKn5LCf9x_3Jks1Sg83AUfqDn3Oo

 

[발굴비화] 전설의 여간첩 이선실 비참한 죽음

[일요신문]1992년 대통령후보 김대중의 낙선에 큰 몫을 했던 ‘중부지역당 사건’. 제2의 남로당으로 불리던 해당 사건의 장본인은 ‘할머니 남파간첩 이선실’이었다. 반세기에 걸친 남북 첩보�

ilyo.co.kr

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4/08/12/2014081200056.html

 

“역대 최고거물간첩 이선실, 고문당하다 죽었다”

1992년 10월 한국 사회를 뒤집어 놓았던 ‘남조선 노동당 사건’의 주모자 이선실. 간첩 사건 당시 북한 노동당 서열 22위였던 그는 300여 명을 포섭해 남파 간첩망을 만들었다.당시 안기부는 이 사

www.newdaily.co.kr

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6873

 

'간첩' 이선실, 중부지역당 존재는 '실재' - 통일뉴스

▶국정원발전위는 1일, 북한공작원 이선실과 중부지역당이 실재했다고 발표하면서 당시 안기부 조사발표의 기본 내용은...

www.tongilnews.com

 

ps
영화로 만들어도 괜챦을 스토리인듯 싶다.

Posted by 배고픈 밥빌런 Posted by 배고픈 밥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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