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빌런 ::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19-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고향으로 돌아오다



 마지막 며칠은 떠나는 일로 분주했다. 함께 수고해 준 수석, 비서관, 행정관, 행정요원, 여직원들과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남들은 청와대에 있다고 하면 대단한 자리에라도 있는 양 생각했겠지만 ‘노무현의 청와대’여서 더욱 조심하고, 더 참고, 더 욕먹고, 하지만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했던, 눈물이 날만큼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고작 사진 찍는 일 밖에 없었지만 언젠가 사진을 보며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했다.

 

 2008년 2월 24일 밤, 대통령이 차관급 이상 모두를 초대해 베푼 만찬을 마치고 아내가 먼저 짐을 싸서 양산으로 내려간 바람에 더욱 을씨년스러운 공관으로 돌아와 지난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참여정부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서글픈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변변한 이임식도 없이 차기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임기를 마치는 우리의 퇴임 문화는 너무 척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대통령 내외분을 모시고 관저의 문을 나서는데 청와대 직원들이 관저에서부터 정문까지 꽤 긴 거리에 모두 도열해서 환송해 주었다.

 

 취임식 행사를 마치고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을 때 환송 나온 수많은 인파 가운데 하염없이 울고 있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중국 동포들이었다. 2003년이던가, 자신들의 어렵고 힘든 처지를 호소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을 때 대통령은 법무부 등 여러 곳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그들을 찾아가 격려한 적이 있었다. 격에 맞지 않는 일정이었지만 고립무원한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무엇보다 필요하리라 생각한 대통령의 속 깊은 마음 씀씀이였다. 그 고마움을 못내 잊지 못해 그들이 나온 것이었다. 그 누구의 환송보다 마음에 남았다.

 기차간에는 참여정부의 많은 인사들이 함께 탔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대통령이 말렸지만 그들은 대통령이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밀양에 내렸을 때도 그랬지만 봉하마을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들을 향한 인사말 끝에 대통령이 크게 외쳤다. “야, 기분 좋다!” 나도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야, 나도 해방이다!”

 

밤늦게 도착한 양산 집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마지막 날까지 바삐 일하는 통에 이사 할 집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는데 수리가 덜 끝난 바람에 잠잘 곳마저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해방감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Posted by 배고픈 밥빌런 Posted by 배고픈 밥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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