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2002년 대선

 

 

국회의원 노무현의 지역주의와의 싸움은 참으로 가열했다. 자신의 유, 불리를 따지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히는 그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그는 15대 총선 때 처음으로 대선 출마 의지를 내보였다. 그리고 2001년 9월 6일, 드디어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하기에 이른다.

 

 그의 대선행보는 남달랐다. 조직과 돈을 먼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들로 학습 팀을 꾸려 국정운영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했다. 참으로 노무현다운 준비였다. 후보 경선이 시작되었고 나는 부산, 울산 지역 경선을 책임지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워낙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지역이라 그간 우리가 각급 노조와 맺은 끈끈한 유대와 인맥이 큰 힘이 되었다. 다들 기억하고 있을 ‘광주 경선의 감동’을 넘어 그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나는 다시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이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란 말이 나왔다. 나를 정치판에 끌어들인 사실이 미안했던지 노 대통령께서 어떤 행사에서 나를 추어주기 위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담긴 그의 속 깊은 우정에 대해 언제나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비록 과분하긴 하지만 지금도 그 말을 가장 듣기 좋은 칭찬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대선 가도는 참으로 험난했다. 후보가 되고 난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지지율이 하락했다. 당내의 후보 흔들기, 후보교체론에 이어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졌다. 가장 힘든 시기였고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그는 모든 것을 뚝심과 배짱으로 정면 돌파하며 꿋꿋하게 버텼다.

 분수령은 정몽준 씨와의 후보단일화였다. 지지율이 뒤지는 상황에서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방식은 매우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나는 후보단일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 방식을 받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씀드렸다. 당내에서는 걱정이 많았지만 오히려 불리함을 무릅쓰고 이런 방식을 담대하게 수용한 노 후보에 대해 국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난관은 또 있었다. 정몽준 씨 측에서 연합정부, 사실상 권력의 절반을 요구하며 그것을 명문화해 달라고 했다. 장관 자리를 어떻게 나눌지를 특정하자는 것이었다. 받지 않으면 판을 깬다는 식이었다. 당내에서는 나중에야 어떻게 될지라도 우선 받으라고 압박했다. 노 후보는 매우 힘들어하면서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살면서 여러 번 겪어 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 가는 것이 정답이다. 뒤돌아보면 그것이 언제나 최선이었다. 당신이 옳다.”고 말씀드렸다. 외로우셨던지 나의 지지의사를 듣고 노 후보는 매우 기뻐했다.

 

그런 선거가 또 있을까. 투표 전날 밤, 정몽준 씨는 단일화 약속을 파기하고 지지를 철회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정몽준 씨를 직접 찾아가라고 종용했으나 노 후보는 잠을 잔다고 하니 내가 깨워서 설득 좀 하라고 전화가 오기까지 했다.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 되던 날은 내 생애 가장 기쁜 날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날만큼은 나도 그 속에 휩쓸리고 싶었다. 아름다운 밤,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싶은 순간이었다. 그때로서는 앞으로 겪게 될 고난은 생각지도 못했다.

 

Posted by 배고픈 밥을적게먹어 Posted by 배고픈 밥을적게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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