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노무현'을 만나다


 판사 임용이 무산 된 나는 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어머니도 모실 겸 부산행을 결심했다. 서울시립합창단원 생활을 하던 아내한테는 몹시 미안한 일이었지만, 아내가 흔쾌히 동의해 주어서 고마웠다. 

 

 사시 동기 박정규 씨의 소개로 노무현 변호사를 찾아갔다. 박정규 씨는 예전 노무현 변호사와 고시 공부를 함께한 인연이 있었고 정작 그가 노 변호사와 함께 일하기로 약속되어 있었으나 갑자기 검사로 임용되는 바람에 나를 대신 소개한 것이었다.  

 

 노 변호사의 첫 인상은 매우 소탈하고 격의가 없었다. 같은 과에 속한 사람이라는 동질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곧바로 의기투합하여 당일로 변호사 동업을 하기로 결정해버렸다. 하지만 말이 동업이지 나는 달랑 몸만 들어가면 될 정도로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였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한번 해보자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당시의 관행처럼 되어 있던 사건 알선 브로커를 단칼에 끊어버렸다. 판검사에 대한 접대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수입이 줄긴 했지만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도 애초부터 생활의 규모를 키우지 않고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자연히 주변의 법조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했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했고 인간적으로도 매우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는 나를 동료로서 존중하여 결코 말을 낮추지는 않았다. 나도 웬만하면 형님 소리를 잘 하는 편인데 그러질 못했다.

 

 

 처음부터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찾아오는 각종 인권, 시국, 노동 사건을 기꺼이 맡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중에는 우리 사무소가 부산 경남 울산의 노동인권 사건의 센터처럼 변해버렸다. 재야운동에도 자연히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는 참으로 치열했고 경계가 없었다.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대의를 위한 실천에서도 한계를 두지 않고 철저하고자 했다. 나는 이것이 그가 가진 원칙주의의 힘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Posted by 배고픈 밥을적게먹어 Posted by 배고픈 밥을적게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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