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빌런 ::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길 4-29

이 글은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글입니다.

출처는 문재인닷컴.

 

학생운동에 뛰어들다 



 나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학과를 가기엔 높은 점수가 아깝다는 매우 ‘비학문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법대로 진로를 바꿨다.

 

 3학년으로 올라가자 대학가의 유신반대 열기는 날로 고조되었다. 긴급조치가 연이어 발효되었고 민청학련사건, 인혁당 사건 등이 터졌다. 이렇다 할 학생운동이 없던 경희대에서도 가을에 접어들자 재단 퇴진 농성을 계기로 유신 반대 시위가 계획되었다. 나는 이 시위에 필요한 선언문을 작성하고 시위를 주도했다.

 

 1975년으로 접어들자 대학가의 반 유신 열기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경희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해 4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학생회 총무부장이던 내가 시위를 이끌었다. 이날 시위로 나는 구속, 수감되었다. 학교에서 제적당한 것은 물론이었다.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집에 알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되도록 늦게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다가 교도소로 이송되던 날, 호송차의 동전만 한 구멍을 통해 어머니가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소리쳐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아들의 구속을 뒤늦게 알고 급히 서울로 올라오신 어머니가 어디라 의지할 데도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검찰청에서 우연히 호송차를 타는 나를 발견했던 모양이었다.

 

 마치 영화 장면 같은 그 순간은 나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에 무리를 해가며 대학까지 보낸 자식이 포승줄에 묶여 교도소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부모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그 죄송스러움을 견디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아예 면회를 오지 않았다. 다행이 담당 판사의 소신 판결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되었다. 그 판사는 얼마 후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해 법복을 벗었다고 전해 들었다.

 

 

Posted by 배고픈 밥빌런 Posted by 배고픈 밥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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